책소개
당나라 이통현(李通玄) 장자의, 일침을 놓는 유명한 선언 “땅에서 넘어진 자 땅을 짚고 일어나라”로 시작되는 결사의 문장이다. 결사란 문자 그대로 해석하면 단체를 만드는 것이지만 여기서는 다만 눈에 보이는 물리적인 사실이 아니라 내적인 결심의 성격이 강하다.
≪권수정혜결사문≫이 쓰였던 고려 시대는 불교가 사회와 문화의 지성을 대표하는 흐름이었다. 당시 최고위층인 왕실에서도 출가를 권하고 실지로 출가하기도 했는데 그 대표적인 예가 왕자로 출가한 대각국사 의천이다. 그렇지만 이미 고려는 지눌이 살았던 시대로 넘어오면서 무신 정권, 몽고의 침입 등을 거치고 사회적으로 혼란스런 상황에 처하게 된다. 이에 따라 불교도 초기보다 권력에 밀착되고 세속화되었다. 불교계 내부적으로도 교리를 연구하는 교종이 몰락하며 교리 연구의 기풍도 희미해지게 되었다. 이렇게 되면서 난세를 벗어나 마음의 평안을 구하는 실천적 수행인 선이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단순하고 쉬운 선은 무신 정권과도 잘 맞아서 교와 선을 통합하지만 선에 기운 모습으로 나아가게 되었다. 지눌은 이런 갈등과 혼란의 원인을 참된 수행의 부재로 보았다. 그래서 참 수행 공동체인 정혜결사를 주창하게 된다.
지눌의 첫 저술인 ≪권수정혜결사문≫은 성격상 매우 선언적인 글로, 1182년 담선법회(談禪法會)에서 비롯한 훗날의 활발했던 토론들을 1190년에 회고하며 쓴 글이다. 비록 발의하고 몇 년이 지나 나중에 쓰인 글이지만 당시의 뜨거운 분위기를 생생하게 전하고 있다. 결사문의 내용은 바르게 수행하기를 바라는 간절한 권고다. 때로는 반론들에 대해 하나하나 반박하고, 때로는 설득하며 도반들의 회의와 두려움을 제거하고 있다. 이론에 대한 반론은 이미 이론서의 수준을 넘어 진리이며, 한편으론 수행의 방법을 자세히 일러 주는 지침서이기도 하다.
200자평
이 책은 “땅에서 넘어진 자 땅을 짚고 일어난다”라는 문장으로 시작한다. 고려가 무신 정권, 몽고의 침입 등으로 혼란한 상황일 때, 불교의 근본인 깨침의 세계로 나아가자는 설득을 담았다. 사회·문화가 어려움에 처했을 때는 새로운 욕망을 창조하는 것이 아니라 전통과 근본으로의 깨달음이 중요하다는 가르침을 강조한 것이다. 이러한 가르침은 종교적인 의미를 넘어 마음의 평화와 안녕을 구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작은 희망이 될 것이다.
지은이
속성은 정씨이며 스스로 목우자(牧牛子)라 칭하길 좋아했다. 시호는 불일보조국사(佛日普照國師). 고려의 수도 개경 서쪽 통주 지방(지금의 황해도 서흥군 동주)에서 국자감의 학정이었던 아버지 정광우(鄭光遇)와 어머니 조씨의 아들로 태어났다. 아버지는 불심이 매우 깊었던 분으로 어린 시절 병약했던 지눌이 병으로 고생하자 불보살께 완쾌되면 출가시키겠다는 서원을 세운다. 그리고 9세 무렵 병이 쾌차하자 출가시켰다고 전한다.
25세 되던 1182년 개경 보제사(普濟寺)에서 담선법회 형식으로 치러진 승과에 합격했다. 이곳에서 이미 정혜결사(定慧結社)의 의지를 다지게 된다. 그러나 곧 남하해 창평(昌平) 청원사(淸源寺)에 머물렀다. 이곳에서 ≪육조단경(六祖壇經)≫을 읽다가 첫 번째 깨달음을 얻는다. 1185년 가을에는 지금의 경북 예천에 있는 하가산(下柯山) 보문사(普門寺)로 옮기는데 이곳에서 두 번째 전환기를 맞는다. 이에 대해서는 자신의 저서 ≪화엄론절요(華嚴論節要)≫ 서문에서 “‘여래의 지혜도 이와 같아 모든 중생은 이미 갖추고 있다. 다만 어리석어 깨닫지 못할 뿐이다’를 읽고 눈물을 흘렸다”고 적고 있다. 1188년 노장 득재선백(得才禪伯)의 초청으로 공산(公山) 거조사(居祖寺) 에 합류하고 1190년 공식적인 활동을 시작하면서 최초의 저술이며 불교계에 영원히 기록될 ≪권수정혜결사문≫을 발표했다. 결사 공동체의 수행자가 늘어나자 1200년 길상사(지금의 송광사)로 자리를 옮기고 1205년 정혜사에서 수선사(修禪社)로 이름을 바꾸었다. 거조사를 떠나 길상사에 이르기 전 약 3년간 지리산의 상무주암(上無住庵)에 머무르며 선 수행을 깊이 했다. 이곳에서 대혜종고(大慧從杲)선사에 의해 완성된 간화선을 만났고 이것이 지눌의 마지막 심기일전의 모습이다. 길상사는 1197년부터 1205년까지 중창불사를 했는데 1200년부터 지눌도 이 불사에 몸소 동참했다. 대중에 앞장서 몸을 아끼지 않는 울력에 동참했다고 기록하고 있다. 당시의 왕이었던 희종(熙宗, 1204∼1211 재위)은 120일의 축일을 제정하기도 하고 친히 송광산에서 조계산으로, 길상사에서 수선사로 이름을 바꾸도록 명해 현판을 내리기도 했고, 금란가사를 만들어 지눌에게 선사했다. 불사가 끝난 1205년에는 불교에 입문한 초심자들이 익혀야 할 규범과 사상을 담은 ≪계초심학인문(誡初心學人文)≫을 저술했다. 1210년, 모친을 천도하는 법연을 베풀고 수십 일이 지나 병이 들었다. 다시 8일 뒤 제자들과 법담을 나누고 평소처럼 고요히 앉아 좌탈입망했다. 희종은 그의 죽음을 애도해서 불일보조국사라는 시호와 탑에는 감로(甘露)라는 이름을 내렸다.
옮긴이
경완(景完)은 법명이고 속명은 한운진(韓雲珍)이다. 1986년에 덕숭총림(德崇叢林) 수덕사(修德寺) 환희대(歡喜臺)로 출가했다. 1989년에 경희대학교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하고 1992∼1996년에 대만(臺灣) 불광산총림학원(佛光山叢林學院)에서 수학했다. 2003년 한서대학교에서 문학 석사를 취득, 2008년 고려대학교에서 중문학 박사과정을 수료했다. 2002년에 대한불교조계종 국제포교사 담임 강사를 지냈고, 현재는 한서대학교에 출강하며 불교문학 관련 박사 논문을 준비하고 있다. 저서로 ≪대학생을 위한 한자와 한문의 이해≫(공저), ≪한국 비구니의 수행과 삶≫(공저), ≪한국 현대작가와 불교≫(공저)가 있다.
차례
1. 서문
땅에 넘어진 자 땅을 짚고 일어난다
마음을 그윽하게
출가는 했으나 무슨 덕이 있겠습니까?
정혜결사를 제안하다
2. 첫 번째 질문: 부처님 가르침이 미약한 시대에는 극락왕생을 기원하는 것이 수승(殊勝)하지 않습니까?
부처님 가르침이 미약한 시대에는 극락왕생을 기원하는 것이 수승하지 않습니까?
부처님은 늘 계시다
정혜를 선택해야 한다
출가해 수행하면 점점 쉬워진다
듣기만 해도 훈습을 쌓는 것이다
즐거움은 오래가지 않고 바른 가르침 듣기는 어렵다
부지런히 발심해 수행해야 한다
비방도 찬탄도 허망한 것
사랑도 미움도 담백하게
3. 두 번째 질문: 신통력에 대해
수행하는데도 왜 신통력이 없는 것입니까?
신통력은 저절로 생기는 것
마음을 닦아야 신통광명이 나온다
교가의 관법도 궁극에 이르면 마음
대승 보살은 성품도 마음도 공함을 안다
마음을 잘 아는 것이 우선이다
4. 세 번째 질문: 이미 불성이 완전하다면 왜 닦아야 합니까?
이미 불성이 완전하다면 왜 닦아야 합니까?
방편설만 믿고 물러나곤 한다
율의와 정혜를 함께 닦아야
계정혜 삼학
삼학의 여러 가지 이름
정혜는 자신을 이기면 얻어지는 것
참선 공덕의 수승함
공덕도 죽음에 이르렀을 때의 혼란을 면하진 못한다
윤회에 마주치면 업에 따라 모두 아름답게 보인다
삼생의 업을 관해야 한다
적적하면서도 성성해야
자세히 살펴 알아야 한다
5. 네 번째 질문: 가르침이 너무 어려워 전부 회의적이 되지 않겠습니까?
가르침이 너무 어려워 전부 회의적이 되지 않겠습니까?
모든 가르침은 바로 중생의 마음
마음을 믿어야
6. 다섯 번째 질문: 수행의 정도에 따른 계위가 있지 않습니까?
수행의 정도에 따른 계위가 있지 않습니까?
부처의 지혜를 갖추는 것이 최고
계위에 따라 닦으려는 병을 고쳐야 한다
근기에 차이가 있기는 하다
가르침을 만나도 성인의 경지라 여겨 물러난다
공부에 따라 차이가 있는 것뿐
자성은 변하지 않는다
마음은 한결같은 것
마음이 제불의 근본
근본을 모르고 지말로 나아간다
수행과 성품은 새의 양 날개와도 같다
신비로운 마음은 여의주와 같다
7. 여섯 번째 질문: 이타행과 수행 사이에서 어느 것이 먼저입니까?
이타행과 수행 사이에서 어느 것이 먼저입니까?
개개인이 다르나 함께 닦아야 한다
문자만을 따르면 아무것도 구하지 못한다
많이 듣기만 해도 구하지 못한다
이타행도 정혜를 닦는 것이 우선
8. 일곱 번째 질문: 극락정토에 대해
극락정토에 대해
개개인이 다르나 최상승 법문에 의지해야
정토 아님이 없다
습기와 장애는 비었음으로 관해야
수행은 자력과 타력을 함께
내외가 서로 돕는 두 종류의 사람
마음이 청정하면 곧 정토
겉모양만 취해서 염불만 최고라고 한다
심체는 하나지만 방편으로 보이신 것
염불하되 상을 여의어야
눈앞에 보이는 장엄도 모두 허망한 상
공이란 본래 공한 것도 없음이니
조금 수행하고 가볍게도 정토 구하는 이를 멸시한다
기운이 강한 사람에 알맞은 수행법
염불삼매는 곧 부처님 마음
삿된 형상을 영험이라 착각한다
유심으로 경계를 극복한다
왕생한 후에도 수행에 따라 오르내린다
구품왕생도 진여와 정혜에 따른다
대승경론을 근거로 수행의 근본을 증명했다
사람만이 닦을 수 있다
삼학 아님이 없다
9. 결사의 경위
해설
지은이에 대해
옮긴이에 대해
책속으로
땅에서 넘어진 자 땅을 짚고 일어납니다. 넘어진 곳도 땅이요, 일어서기 위해 의지해야 할 곳도 땅입니다.
-3쪽
이제 타인을 제도하려고 발원했으니 우선 정혜를 닦아야 합니다. 그렇게 수행의 힘이 생기면 자비의 문을 구름처럼 펼쳐 보일 수도 있으며, 실천의 바다도 물결을 타고 흘러갑니다. 미래세가 다하도록 모든 괴롭고 번뇌하는 중생을 구제하며 삼보에 공양해 부처님의 가업을 이을 것입니다.
-104쪽